지난 2월을 국민들의 함성으로 채웠던 평창 동계올림픽은 선수들의 열정이 돋보이던 대회였다. 많은 메달과 그보다 더 많은 감동을 가져다주었던 올림픽은 세계인의 찬사를 받으며 폐회식을 맞이했다. 하지만 환호성이 그치기엔 아직 이르다. 이달 9일부터 시작되는 패럴림픽에서 우리는 올림픽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금 맛볼 수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행보로 경기장을 압도하는 선수들이 있다면, 그 뒤편에는 거듭된 연구와 보완으로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려는 각고의 노력이 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iCAE 연구실(책임교수 박근) 연구진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해당 연구진은 3D프린팅 기술로 바이애슬론용 개인 맞춤형 눈가리개를 개발하고, 대한장애인체육회 국가대표 선수단에게 지원했다. 바이애슬론 경기의 경우 선수의 안정적인 조준 상태가 관건이다. 그런데 기존의 눈가리개는 얼굴에 밀착되지 못한 채 들뜨기 쉬워 선수의 기록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한 개인맞춤형 눈가리개의 개발은 곧 국가대표 선수들의 괄목한 만한 기록 향상으로 이어졌다. 이에 훌륭한 성과를 거두어낸 연구진(박근 지도교수, 김재은, 하연수, 구본아 학생)과의 인터뷰를 3월 6일 본교 프론티어관 908호에서 진행했다.
▲(사진 왼쪽부터) 하연수, 김재은 학생, 박근 지도교수, 구본아 학생
Q.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하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하고, 2018 평창 패럴림픽 참가 선수단 지원까지 이끌어낸 소감은?
▲ (박근) 우선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고요. 진행 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학생들은 2016년 2학기에 제 CAD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고요, 당시 제가 저희 학과의 ADBL로 ‘동계스포츠용 개인맞춤형 아이템의 3차원 설계 및 프린팅’과제를 제시했습니다. 그때 이 학생들이 ‘바이애슬론용 맞춤형 눈가리개’를 제안하여 시제품을 만들었고 관련 UCC를 제작하여 유튜브에 등록하였습니다. 이듬해(2017년) 1월 대한바이애슬론 연맹에 연락하여 국가대표 선수단 지원을 제안하였고, 여름경에 패럴림픽 대표팀에서 제작을 의뢰하여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어요.
▲ (하연수) 일단 교수님과 본아, 재은이한테 고맙고요. 저희 작품이 선수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고 영광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취지로 생각했던 작품이고, 이렇게 커질 거라고 생각은 못해서 조금 얼떨떨하지만 감사한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선수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해서 만든 작품이었고 정말로 도움이 되셨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구본아) 처음에는 단순히 텀프로젝트 과제로 시작한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운이 따라줘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습니다. 작품을 만들면서 ‘과연 이 작품이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종종 들었지만, 선수분들이 직접 사용하시고 도움이 된다고 하셔서 정말 뿌듯했습니다. 또 저희가 만든 작품을 패럴림픽에서 사용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가게 된다는 게 기대되고 신기합니다.
▲ (김재은) 텀프로젝트로 진행하면서 애착이 많이 갔던 작품인데 종강한 이후에도 함께한 친구들과 계속하게 돼서 즐거웠습니다. 선수분들과 코치님께서 지원 제의를 먼저 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저희가 먼저 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으니까요. 후에 선수분들께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뿌듯했습니다. 조만간 개최될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바이애슬론 경기를 빼놓지 않고 관람할 예정입니다.
Q. 개인 맞춤형 눈가리개의 특장점은 무엇인가?
▲ (공통) 바이애슬론은 일정 거리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주행한 후에 사격을 하는 경기에요. 따라서 사격에 임할 때 선수들은 숨이 가쁜 상태이며, 시간에 쫓기는 만큼 안정적인 조준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눈가리개는 소총 조준부에 장착하여 조준경을 제외한 주변의 시야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데, 기존 눈가리개의 경우 얇은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져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지 못하고 바람이 불 때 흔들리는 단점이 있었죠.
▲ 신의현 선수의 기존 눈가리개(좌측)와 맞춤형 눈가리개(우측)의 사격자세 비교사진. 맞춤형 눈가리개가 안면에 안정적으로 밀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저희가 제작한 맞춤형 눈가리개는 3D스캐닝을 통해 선수의 안면 데이터를 획득하여 이를 기초로 3D설계를 진행했기 때문에 선수들의 얼굴에 완전히 밀착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추가 수정과정을 통해 선수들의 사격 습관을 반영했습니다. 예를 들어 안면을 완전히 눈가리개에 밀착시키지 않고 눈썹 부위를 비스듬하게 밀착시키는 선수도 있고, 조준 시 엄지손가락을 눈가리개 하단에 고정하는 선수도 있는데, 이러한 습관을 반영해서 진정한 맞춤형 눈가리개를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Q. 안면형상 3D스캐닝부터 3D설계, 그리고 시제품 제작과 검증 등 세부 개발 과정을 분업으로 진행했다고 하는데, 각자의 분야에서 개발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 (박근)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시간이었어요. 선수들이 주로 외국에서 전지훈련을 하다 잠시 귀국하는 틈을 타서 미팅을 하고 출국 전까지 제작을 해서 전달해야 했으니까요. 그것도 하필이면 1차 제작은 중간고사 기간에, 2차 제작은 연말연시에 겹쳐 학생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 (하연수) 저는 신의현 선수, 이정민 선수, 원유민 선수의 눈가리개 설계를 맡았는데요,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시간적인 문제도 있었고, 제작하는 데 있어서는 초반에 스캔한 데이터를 전부 이용하려고 하다 보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눈 부분의 스캔 데이터는 굴곡이 너무 심해서 총기와 결합되는 부분이어서 두께를 부여하여 3차원 입체 형상으로 설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 바이애슬론 국가대표 선수 맞춤형 눈가리개의 3차원 설계 과정
▲ (김재은) 처음에 연수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얼굴의 복잡한 곡선을 모두 이용하는 것이 어려워서 이를 단순화시키기 위해서 모두가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또한 제가 맡아서 했던 제품 중 이승진 선수의 눈가리개가 어려웠습니다. 이승진 선수는 평상시 안경을 착용한 상태에서 사격할 뿐만 아니라 주 시력이 왼쪽 눈이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제작해야 해서 고민을 좀 했습니다.
▲ (구본아) 제가 맡은 분야는 시제품 제작(프린팅) 부분이었습니다. 3D프린터로 프린팅을 할 때 작품의 특징을 고려해 어떤 방향으로 뽑혀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하고 형상이 너무 뾰족하거나 굴곡이 많으면 잘 뽑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저희 작품이 안면 형상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라 형상이 복잡해 작품 하나를 뽑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니 보유한 3D프린터기로는 마감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마지막에는 ADBL 사업단 프린터까지 사용해 겨우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Q. 국가대표 신의현 선수가 개인 맞춤형 눈가리개를 사용하며 각종 월드컵 대회에서 사격 적중률이 기존 80~85%에서 95%까지 끌어올리는 등 눈에 띄는 경기력 향상을 보였다. 맞춤형 눈가리개와 관련하여 다른 나라 선수들의 반응은 어땠나?
▲ (공통) 저희가 아직 다른 나라 선수를 만나보지는 못해서……. 그런데 사실 신의현 선수가 12월 캐나다 월드컵에서 메달 획득 시 독일 선수가 우리 눈가리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얘기하면서 “어쩌면 올림픽 때 만들어서 올지도 몰라요”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올림픽 때까지는 보안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논문발표나 언론홍보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일단 우리 선수들의 경쟁력이 최우선이니까요. 이제는 외국 선수단이 입국한 상태이니 자유롭게 말할 수 있죠.
맞춤형 눈가리개의 개발과 지원만으로도 큰 업적임이 분명한데 그들은 완성에 안주하지 않았다. 대학민국 국가대표 선수의 실질적인 경쟁력을 생각해 성과 홍보조차도 연기하는 모습에서 사려 깊은 태도가 엿보였다.
Q. 앞으로 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하여 새롭게 개발을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각자 소개해주길 바란다.
▲ (박근) 저는 현재도 3D프린팅 관련 연구를 계속 수행하고 있고, 학생들 교육에도 지속적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신체장애를 극복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선수들의 열정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기회만 된다면 그분들을 계속 도와드리고 싶어요.
▲ (하연수) 이번 작품으로 패럴림픽 종목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올림픽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했었는데, 그곳에서 여러 경기를 보면서 든 생각은 개인 맞춤형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 스포츠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루지나 스켈레톤에 사용되는 썰매 같은 경우도 선수 몸에 정확히 맞는 썰매면 더 좋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3D프린팅을 활용해서 개발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 (구본아) 이번 작품을 진행하면서 개인 맞춤형이 일분일초를 다투는 스포츠에 정말 필요하고 적합한 기술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더불어 개인 맞춤형은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개발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작품도 많은 노력과 시간 끝에 만들어진 훌륭한 작품이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고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지속적인 개발과 분석을 통해 작품이 좀 더 완성도 있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의 개발도 도전해 보고 싶지만 아직까지는 저희가 처음으로 진행했던 바이애슬론 종목에서의 작품을 좀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 (김재은) 현재 바이애슬론 작품을 선수분들께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보완을 먼저 한 후 선수분들께서 이 이상 보완할 부분이 없다고 충분히 만족하신다면, 다른 종목의 선수분들께도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저희가 아직 알지 못할 뿐 맞춤형 아이템을 이용해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분들이 많을 테니까요.
▲ 인터뷰에 응한 iCAE 연구진이 맞춤형 눈가리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근 교수 및 학생들의 포부를 끝으로 질의응답을 마무리했다. 공통적으로 스포츠 분야에서의 활용 범위를 넓히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모두 2018 동계패럴림픽을 넘어 대한민국 스포츠의 전망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답변이었다. 선수들의 열정이 새로운 기술과 어우러졌을 때 나타날 시너지효과를 감히 상상해볼 수 있었다.
한편, 다가오는 2018 동계패럴림픽은 3월 9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0일간 개최되어 3월 18일에 막을 내릴 예정이다. 특히 신의현 선수는 10일에 진행되는 바이애슬론 경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서울과학기술대 iCAE 연구실이 개발·지원한 개인맞춤형 눈가리개와 함께한 그가 ‘금빛 사냥’에 성공하는 장면을 목격하길 기대해본다. 그것은 신의현 선수가 한국 바이애슬론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순간일 것이다.
인터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홍보대사 정서진